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앨런 시어러 (문단 편집) ===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 시어러는 [[UEFA 유로 1996|유로 1996]] 이전 국가대표에서 12경기 연속 무득점으로 무지하게 까였으나, 유로 96 본선에서는 같은 뉴캐슬 출신인 [[폴 개스코인]]과 더불어 당대 최강 팀들 중 하나였던 네덜란드를 4-1로 무찌르는 등 날아다녔고, 정작 95-96 시즌 [[케니 달글리쉬]] 감독이 풋볼 디렉터로 영전하면서 지도력에 문제가 생긴 블랙번은 7위로 떨어져 시어러를 지킬 여력이 없어졌다. [[바비 롭슨]] 경의 [[FC 바르셀로나]]를 비롯하여 [[유벤투스 FC]], 그리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까지 유럽 최고의 팀들이 시어러를 잡기 위해 움직였고, 시어러가 가족을 위해 영국에 머물려 했던 탓에 이들 중 제일 유력한 행선지는 맨유였다. 결국 맨유로의 이적이 성사되려던 찰나,[* 이미 맨체스터에 이사할 집까지 사둔 상황이었다.] 고향팀 [[뉴캐슬 유나이티드 FC|뉴캐슬]]에서 드라마틱한 하이재킹에 성공하며[* 이렇게 시어러를 놓친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시어러를 대체할 자를 찾다가, 평소 눈여겨보던 한 선수에게 영입 제의를 했는데, 그가 바로 '''[[올레 군나르 솔샤르]]...'''] 1500만 파운드라는 당시로서는 경이적인 세계 최고액의 이적료를 대가로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뉴캐슬 쪽으로 마음이 움직인 것은 자신의 고향팀인 것과 더불어 당시 뉴캐슬의 감독이 자신의 우상이었던 [[케빈 키건]]이었기 때문. [[파일:external/news.bbc.co.uk/_45626947_shearer_newc_signing_416pa.jpg]] 팬들은 전 시즌 2위를 기록했던 뉴캐슬이 시어러의 합류로 화룡점정을 찍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첫시즌에는 31경기 25골을 기록했으나 팀은 또다시 2위에 그치며 우승에 실패했고, 그 다음 시즌에는 부상으로 인하여 17경기 2골에 그치고 팀의 성적 역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이후 뉴캐슬이 감독 교체 등으로 인해 자리를 잡지 못하면서 우승 후보에서 중하위권팀으로 곤두박질하는 사이에도 시어러는 꾸준히 득점을 올렸으나 1969년 인터 시티 페어스 컵(現 [[UEFA 유로파 리그]]) 우승 이후로 메이저급 트로피 획득에 실패한 뉴캐슬 팬들의 갈증을 풀어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2000-2001 시즌에는 또 한번의 심각한 부상으로 선수생활이 끝날 위기까지 갔으며, 이로 인해 불가피하게 국가대표팀 은퇴를 택하기도 했다. 이 시점에서 이미 대부분의 축구 팬은 시어러, 그리고 뉴캐슬의 전성기는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파일:external/i.telegraph.co.uk/shearer_robson_1454929c.jpg]] 하지만 전설적인 명감독 [[바비 롭슨]]의 조언으로 시어러의 플레이 스타일은 크게 일변했다. 상술했듯 섀도우 스트라이커로 뛰면서 빠른 스피드와 뛰어난 패스플레이에 기복 없는 득점능력까지 보유했지만 무릎이 박살나며 스피드가 급감해버렸다. 동시대 최고 스트라이커 [[호나우두]]와 비슷한 케이스였다. 하지만 시어러는 호나우두와 다르게, 부상으로 쉬는 기간 동안 바비 롭슨의 조언에 따라 열심히 운동해 몸을 불려 타겟 스트라이커로 완벽히 변신했다. 원체 섀도우 스트라이커로 뛸 때도 축구 자체를 보는 눈은 뛰어났기에 타겟으로 변신해서도 공간을 읽고 동료를 활용하거나 동료에게 공간을 열어주는 플레이가 준수한, 프리미어 리그 최상급 타겟 스트라이커가 되었다. 이후 웨일스 출신의 준족 스트라이커 [[크레이그 벨라미]]와 황금콤비를 이루며 2001-2002 시즌 37경기 23골로 재기하여 팀의 우승도전을 이끌었다. 뉴캐슬은 이후 세 시즌 동안 꾸준히 국내리그와 유럽에서 우승에 도전하지만 행운이 따르지 않아 번번히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시간은 흘러 결국 롭슨 감독과 벨라미 모두 팀을 떠났고 뉴캐슬은 다시금 하향세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점점 들어가는 나이와 어수선한 주변환경에 아랑곳하지 않고 시어러는 계속 뉴캐슬을 최전방에서 한결같이 이끌었고 계속 한결같이 골을 넣었다. 막장 감독의 대명사 [[그레이엄 수네스]] 아래에서 뉴캐슬은 강등 위기에까지 몰리기 시작했고, 2004-2005 시즌 종료 이후 은퇴를 결심했던 시어러는 마땅한 대체자가 보이지 않았던 팀을 구하기 위해 마지막 한 시즌을 뛰기로 한다. 뉴캐슬 팬들은 이 마지막 한 시즌 동안 시어러가 고향팀의 유니폼을 입고 트로피를 손에 쥘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랬다. 마지막 기회는 FA컵에서 찾아왔다. 불안정한 리그 성적에도 불구하고 FA컵에서는 원정에서 [[아스날 FC]]를 격파하는 등 선전했고, 결국 8강에 오르나 [[첼시 FC]] 원정이라는 난관을 만나게 되었다. 시어러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뉴캐슬에서의 트로피를 안겨주기 위해 팀은 혼신을 다해서 뛰었으나 첼시의 막강한 수비력을 극복하지 못하고 1-0으로 석패하고 말았다. [[파일:external/news.bbc.co.uk/_45626948_shearer_lastgoal_gt.jpg]] 그로부터 1달여 뒤였던 2006년 4월 17일, 시어러는 라이벌 선더랜드와의 경기에서 페널티골을 기록하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으나 훌리오 아르카의 거친 태클에 무릎인대 파열이라는 부상을 당하며 시즌, 그리고 커리어를 마무리하게 되었다. 숙적 선더랜드를 상대로 결승골을 넣으며 선수생활을 마감한 모습은 역시 "시어러답다" 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을거 같다. 커리어 마지막 시즌에도 시어러는 리그에서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했고 박수받을 때 그라운드에서 은퇴할 수 있게 되었다. [[파일:external/i17.photobucket.com/_41398451_stand_ap.jpg]] 결국 2006년 5월 11일, 시어러는 은퇴 기념 경기를 갖고 모든 축구팬들의 축복 속에서 현역생활을 마무리한다. 그가 뉴캐슬에 남긴 것은 395경기 206골,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추억이었다. 시어러가 은퇴한 이후로 뉴캐슬은 공격력이 눈에 띌 정도로 떨어졌고, 이는 뉴캐슬이 08-09 시즌에 강등당한 이유 중 하나였다. [[앤디 캐롤]]이 시어러의 계승자로 기대를 모았으나 캐롤이 리버풀로 이적함에 따라 9라는 숫자는 다시 공석에 놓이게 되었다. 앤디 캐롤 이적 후, [[파피스 시세]]가 새로이 9번을 달았지만 이 선수는 만능인 시어러와는 달리 아주 전통적인 득점만 노리는 스트라이커이기 때문에 시어러의 공백을 메꾸지 못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